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This article first appeared in our November 2005 issue.

November 2005


삶의열망

B.W.호프만

며칠 전 에이미 러젠드레와 전화상 인터뷰를 할 때 , 그녀는 프로페셔널한 무용가라기 보다는 한사람의 어머니에 더 가까웠다 . 그러나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. 별로 멀지 않은 과거만해도 그녀는 어머니이기보다는 프로페셔널한 무용가였다 . 전화상으로 서로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그 시간 , 에이미는 무용가인 동시에 또한 한사람의 어머니였다 . 올 여름 초 , 에이미는 임신 8 개월인 몸으로 워싱턴주에 있는 벨로시티 극장 (www.Velocity.org) 에서 프로페셔널한 무용공연에서 무용을 했다 .

에이미는 자신의 전문가 경력에 구술안무를 문제없이 첨가할 수 있다 . 만삭의 몸으로 이루어내는 예술성에 대해 그녀가 설명하는 것을 들으면서 나는 딴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. 나는 더 이상 소음이 심한 동네 스타벅스에서 셀폰에다 머리를 바짝 갇다대고 있지 않았다 . 나는 센터스테이지 관중석 두번째 줄에 앉아 아름다움 , 능숙함 , 그리고 철저한 연약함과 함께 무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.

나는 우리 첫아들 젭을 임신하고 있을 때 나의 아내가 얼마나 거동이 불편했는지를 생각했다 . 에이미는 공연 당시 자신의 몸이 ‘ 통제불능 ’ 상태였다는 사실이 오히려 보다 진정하고 인류학적인 상태가 무대위에 존재할 수 있게 해 주었다고 인정했다 . 그녀는 “ 아기나 동물은 손으로 하는 조작이나 공연 능력이 없으므로 , 무용작품속에 끌어들일 수 없다 ” 고 말했다 . 나는 내가 본 적이 있는 서커스 동물들에 대해 곰곰히 생각을 해 본 뒤 , 그녀의 말이 담고 있는 아이로닉한 진리를 느끼게 되었다 .

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에이미는 ‘ 돌기 ’ 혹은 ‘ 방향바꾸기 ’ 와 같은 단어들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. 오히려 에이미가 설명하는 그 무용은 ‘ 열망의 과정 선상에서 ’, 그리고 ‘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 속에서 ’ 와 같은 웅변적 문구들 속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. 바로 이런 문구들을 듣는 순간 , 경사진 다리 모습 , 허공을 휘젖는 팔 , 그리고 끝없는 그림자 만들기의 심포니가 내 눈앞에 서서히 다가와 보이게 되었다 .

8 개월째 임신한 몸으로 이루어 낸 이 공연에서 에이미가 관객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것은 ‘ 소망 ’ 의 공간이었다 . 이 이인 ( 二人 ) 공연에서 에이미와 그녀의 댄스 파트너는 유토피아의 이념 , 그리고 우리 모두는 어떻게 어떤 면에서 어떤 종류의 완벽함에 도달하기를 기대하고 있는지를 탐색했다 . 에이미는 물론 이것이 불가능한 것임을 인정했다 . 그리고 우리들은 완벽함을 향해 기웃거리고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는 것이었다 . 무용은 우리가 결코 획득할 수 없는 , 그러나 항상 열망의 과정에 있는 그 어떤 것의 구조형태를 취하고 있다 .

무용은 또한 여러 차원에서 만남이자 이별이었다 . 첫째 , 거기에는 물리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이 있다 . 에이미는 이것을 마지막 공연으로 미대륙을 횡단해 뉴욕주로 이사를 간다 . 에이미의 남자친구이자 지금 태어난 딸 스텔라의 아빠인 폴은 업스테이트에 있는 바드대학 사회정의학과 부학장이다 . 스텔라에게는 이복언니가 있는데 , 스텔라가 언젠가 이 이복언니를 알게 되고 함께 놀게 될 곳도 바로 그곳이다 . 폴은 한때 레즈비언 커플에게 기꺼이 정자를 기증한 바 있으며 , 그 이후로 가까운 친구사이로 지내고 있다 .

만남은 배속에서 자라고 있는 아기와의 만남이자 , 임신 이전의 삶에 대한 작별이다 . 여기서 에이미는 기대감의 연속에 대해 이야기 했다 . 진보와 실패에 대한 , 그리고 남아있는 것과 남아있지 않는 것에 대한 기대감 . 이야기가 이 부분에 이르렀을 때 , 내 머리는 극장 관중석과 스타벅스에서 풀쩍 뛰어나와 내 두 아들의 침대 머리맡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있었다 . 많은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, 나는 종종 두 아들이 잠자는 침대 옆에 앉아 그들이 자는 모습을 지켜본다 . 아들들이 움직이지 않고 정지해 있을 때 , 그 순간 나는 모든 것을 중지 한 채 , 내 자신의 삶과 아버지 역할을 완전하게 이루고 싶다는 나 자신의 열망을 깨 닫고 이해하게 된다 . 나는 내 기대감들을 만족시켰는가 , 아니면 뭔가가 부족한가 ? 나는 내 아내의 , 그리고 내 두 아들의 기대감에 부응했는가 ? 그리고 하나의 삶으로서 그 모든 것의 연속성은 완벽함을 향한 내 자신의 진솔한 ‘ 기웃거림 ’, 그리고 진보와 실패의 끊임없는 무용 속에서 끊임없는 댄스로 계속 움직이고 있다 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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